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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김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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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돈암서원의 저서입니다.

가례집람(家禮輯覽)

김장생 선생은 『가례』의 내용이 현실과 맞지 않는 사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예절의 내력과 후세의 여러 해석에 일관성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여 그의 만년에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 1685년(숙종 11)에 송시열(宋時烈)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의 노력으로 간행되었다. 김장생은 『가례집람』 외에도 『의례문해(疑禮問解)』·『개장의(改葬儀)』·『제의정본(祭儀正本)』·『예기기의(禮記記疑)』 등의 예절에 관한 글들을 남겼는데, 이러한 저술들은 김장생이 예학의 본원적인 추구와, 사례(四禮) 중에서도 그 절차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 집필한 것이다. 이들의 연구성과는 모두 『가례집람』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한편, 『가례집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장생과 많은 학문적 대화를 가졌던 신의경(申義慶)의 연구성과도 도외시할 수 없다. 신의경은 『상례비요(喪禮備要)』 1책을 저술하여 김장생의 상례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가례』의 본문을 중심으로 하고 예서(禮書)의 고전과 여러 학자의 관계설을 주석으로 삼아서 완성한 이 『가례집람』은 권1은 통례(通禮), 권2는 관례, 권3은 혼례, 권4∼9는 상례, 권10은 제례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하는 데 편익을 주기 위한 도설(圖說)을 붙이고 있는 것이 특색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보충한 제유의 설에 대해서는 모두 인용한 책이름을 적고 편목(篇目)을 밝혔으며, 자기의 의견일 경우에는 ‘愚(우)’자나 ‘按(안)’자를 써서 분명히 했다.

이 책은 그 뒤 가례의 연구에는 물론, 사례(四禮)의 행용에서 늘 참고해야 하는 기본 예서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예경(禮經)의 정신과 가례의 원칙, 그리고 시속(時俗)의 변례(變禮)를 상고하는 데는 말할 것도 없고 가례의 시용(施用)에서 오는 시비를 판단하는 데 권위있는 준칙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김장생이 조선 후기의 학계와 사상계에 차지한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것과 그의 예학에 관한 권위적인 위치에서 온 결과이기도 하다. 총 10권 6책으로, 규장각 도서에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상례비요(喪禮備要)

신의경은 당시 김장생(金長生) 등과 같은 예학자와 동유할 정도로 이 방면에 조예가 깊었던 학자였다. 원래는 1권 1책의 분량이었으나 친구인 김장생이 1620년(광해군 12) 여러 대목을 증보하고, 아울러 시속의 예제도 참고로 첨부하여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고 서문을 붙여서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그 뒤 김집(金集)이 이를 다시 교정하여 1648년(인조 26) 2권 1책으로 간행하면서 다시 서문을 붙였다. 책 끝에는 1621년에 쓴 신흠(申欽)의 발문이 있다.

주자(朱子)의 『가례(家禮)』가 제시하는 예절 가운데 관혼(冠婚)은 경사스러운 일이기에 간혹 소략함이 있다고 하여도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상례와 제례, 특히 상례의 경우는 한 치의 소홀함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6세기만 해도 『가례』의 보급·인식이 조선사회에서 충분히 정착되지 못하였고, 전통적인 속례(俗禮)가 여전히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계몽하기 위하여 이 책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가례』의 상례관계의 본문을 중심으로, 『예경(禮經)』과 여러 학자들의 이에 관한 해석을 참고, 유취하여 초상(初喪)에서 장제(葬祭)에 이르는 모든 예절을 요령 있게 찬술하였다. 그리고 사당(祠堂)·신주(神主)·의금(衣衾)·최질(衰絰)·오복제(五服制)·상구(喪具)·발인(發靷)·성분(成墳)·입비(立碑)·수조(受弔)·진찬(進饌) 등의 도설(圖說)을 책머리에 실었다.

이 『상례비요』는 비록 분량은 많지 않지만 상례관계의 요긴한 부문을 요령 있게 설명하였고, 그 부문의 합리적인 해설을 권위 있는 여러 학자의 예설에서 발췌, 정리하여 놓았으며, 더욱이 김장생·김집 부자의 권위 있는 증보·교정이라는 점에서도 이 책의 이름은 높았다. 따라서 이후의 상례의 절차에서는 물론, 차후의 사례관계 편찬물의 중요한 저본(底本)이 되기도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례문답(典禮問答)

전례문답은 사계 김장생의 편지글과 고증 사례들을 모은 것이다. 이 글은 제목 그대로 전례에 대해 묻고 답한 글이 주를 이루지만, 사계 자신의 견해를 부록하거나 특정 인물에게 보낸 편지글들도 있다. 또 이를 증거할 만한 전례와 근거들을 고증이라 하여 그림과 함께 실었다. 정원군 추숭에 대해 사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하여 보낸 첫 편지는 1624년(인조 2) 6월에 우의정 신흠,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 이조판서 오윤겸, 예조판서 이정구, 부제학 정경세·조익·정홍명·최명길·장유에게 보낸 것이다. 지중추부사 이정구가 경연석상에서 아뢴 것의 뒤에 쓴 글은 1624년(인조 2) 10월 23일에 있었던 주강에서 이정구와 정경세가 정원군의 호칭에 대한 사계와 박지계의 설을 논란한 사실에 관한 것이다. 먼저 그 대화내용을 싣고 그 말미에다 사계 자신의 견해를 변론하였다. 이와 같은 형식이 1630년(인조 8) 8월 19일의 주강에 있었던 이귀의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후 전례에 관한 문답이 이어졌는데, 신흠에게 답한 글이 1626년(인조 4) 5월이었다. 장유와 최명길, 정홍명 외에, 1627년(인조 5) 1월에 한교에게 답한 글이 있다.

편지글이 아닌 것으로서 송호부(宋戶部)가 예에 대해 논한 글 뒤에 쓴 글이 있다. 송호부는 중국사람 송헌(宋憲)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실록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모두 헌(獻)으로 되어 있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1629년(인조 7) 중국에 사신으로 가던 최유해(崔有海)가 호부낭중 송헌에게 추숭에 관한 예를 물어 그가 지어준 설을 이귀(李貴)에게 보였는데, 이귀가 차자를 올리면서 이 글을 바쳤다고 한다. 그 설에 대해 사계가 이론을 덧붙인 것이다.

장유에게 목릉(穆陵)의 면복(緬服)을 입는 일에 대해 논하기 위해 보낸 편지는 일실되었다. 1631년(인조 9) 1월에 조익 등에게 보낸 편지는 칭고(稱考)의 잘못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조익과 최명길 등의 견해를 묻는 편지이다. 권22의 『전례문답』은 고증(考證)이다. 첫째는 『의례』 출전의 천자제후정통방기복도(天子諸侯正統旁朞服圖)에서, 임금의 부모와 처와 장자와 조부모를 위하여 입는 부장기(不杖朞)에 대해서, 자하의 전(傳)과 정현의 주(注), 가공언의 소(疏)를 통해 고증한 것이다. 둘째는 신종군복도(臣從君服圖)에 대해, 양복과 『통전』, 『강목』등을 근거로 고증한 것이다. 여기에는 간간이 사계의 견해를 덧붙였다. 셋째는 명나라 헌종부터 세종까지의 계보를 그림으로 그리고, 세종이 흥헌왕의 제사를 주관할 사람과 칭호에 대해 의논하게 한 사실과 관련한 기사들을 모두 수록하고, 마지막에 사계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의례문해(疑禮問解)

김장생 선생이 평소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문인들과 친구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가례』의 순서에 따라서 제목을 붙였고, 『가례』에 없는 것은 따로 제목을 달았다. 이 책은 답사(答辭)가 주로 되기 때문에 인용된 경전의 말들은 글자 한 자라도 혼동되지 않게 하였으며, 인용하여 증거로 삼은 말들은 모두 그 책의 이름과 편목(編目)을 따서 만들었다.

어떤 때는 그 아래에다 논변해 놓고 편자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하여 ‘안(按)’이라는 글자로 표시하여 따로 구별하고 주를 달았다. 질문한 사람은 그가 누구인가를 기록하였고, 그 이름을 잊어버렸을 때에는 빼놓았다. 이 책을 지은 목적은 당시 선비들의 모든 처신과 행사를 예에 맞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가 당시 선비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던 사회에서 행위규범인 예를 알지 못하면 그 사회에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예의절목은 시대에 따라 변한 것도 있어 과거의 예서에 기재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김장생의 친우와 문인들은 이것을 질문하였다.

김장생은 이에 대하여 『주례(周禮)』·『의례(儀禮)』·『가례』·『의례경전통해(儀禮經典通解)』·『의절(儀節)』·『통전(通典)』 등을 참고로 하고 자기의 판단을 가하여 대답하였다. 이 물음에 참가한 학자로는, 송준길·이경여(李敬輿) 등 11명이다. 그 목록을 살펴보면, 권1에 가례도(家禮圖)·통례(通禮)·종법(宗法)·관례(冠禮)·혼례(婚禮) 등, 권2에 상례(喪禮) 전반에 관한 것, 즉 반함(飯含)·소대렴(小大斂)·장기(杖期) 등, 권3에 상복(喪服)에 관한 대공(大功)·시마(緦麻) 등과 장법(葬法)에 관한 허장(虛葬)·개장(改葬) 등, 권4에 소상(小祥)·대상(大祥)·기일(忌日)·묘제(墓祭) 등이 기재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근사록 은 중국의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頤) 등의 저서와 어록 가운데서 중요한 것을 뽑아 엮은 것으로 성리학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근사록석의』는 엄밀하게 보면 정엽의 혼자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김장생(金長生)과 깊은 관련이 있다. 김장생은 일찍부터 『근사록』을 공부하면서 난해한 곳은 선유의 학설을 인용하고 때로는 자신의 견해를 붙여 정엽에게 간정(刊正)을 요청한 바 있다. 정엽은 김장생이 시작한 작업을 더욱 체계적으로 연구, 정리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생질인 나만갑(羅萬甲)이 이를 베껴서 세상에 전하여지게 되었다.

그 뒤 송시열(宋時烈)이 본문과 주석을 구분하고 내용을 고증하여 1661년(현종 2)에 간행한 것이 현존하는 판본이다. 일반적으로 『근사록석의』라 하면 이 책을 말하는 것이며, 『사계전서(沙溪全書)』에 실려 있는 『근사록석의』와는 다른 것이다. 권두에 김장생과 송시열의 서문이 있다. 서술방식은 원문의 구절은 큰 글자로 쓰고, 주석은 작은 글자로 하여, 축조주석(逐條註釋)한 것이 특이하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경서변의(經書辨疑)

조선 중기의 학자 김장생(金長生)이 경서 가운데 의문나는 조목에 대해 상정(商訂: 깊이 생각하여 정정함)하고 변론한 책. 7권 3책, 목판본으로 『사계전서(沙溪全書)』에는 51권 중 제11∼16권까지에 수록되어 있다. 1618년(광해군 10)에 완성되었으며, 1666년(현종 7)에 간행되었다.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소학』·『대학』·『논어』·『맹자』·『중용』·『서전』·『주역』·『예기』의 순으로 엮어져 있으며, 저자의 서문과 문인인 장유(張維)·송시열(宋時烈)의 발문이 있다. 각 항목의 구성은 경서의 본문과 주자주(朱子註) 및 소주(小註), 언해 가운데 의심나는 부분을 주제로 제시하고, 한 칸 아래에 주제와 관계되는 제가의 학설을 인용한 다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의도적으로 저술한 것이 아니라 사서육경 및 정주(程朱)의 저서를 공부해 나가는 동안 이해하기 어려운 점과 경전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학설 가운데 의심나는 부분을 수시로 적어 모아 연구 자료로 삼고자 한 것이 책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경전 전반에 걸쳐 난해한 곳에 이르러 고금의 문헌과 학설이 저자의 안목에서 채택되고 비판된다. 특히, 중국 송나라의 주석뿐만 아니라 스승과 선후배 학자들의 토론내용이 변문(辨文)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경학사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한 주요 학자들을 보면, 스승인 송익필(宋翼弼)·이이(李珥)를 비롯하여 이황(李滉)·권근(權近)·정경세(鄭經世)·정철(鄭澈)·정홍명(鄭弘溟)·신흠(申欽)·조목(趙穆) 등 조선 전기 성리학자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황과 이이의 사칠논변(四七論辨) 등 한국유학사에서 쟁점으로 등장했던 문제들이 폭넓게 논의되고 있어, 한국경학사상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사계전서(沙溪全書)

조선 중기의 학자 김장생(金長生)의 시문집. 권수에 범례와 목록이 있고, 각 권마다 개별 목록이 별도로 있다. 권1에 시 3수, 소 26편, 차(箚) 1편, 계(啓) 3편, 장계(狀啓) 2편, 권2∼4에 서(書) 86편, 권5에 서(序) 9편, 발 3편, 기 2편, 설 1편, 공이(公移) 3편, 축문 1편, 제문 2편, 권6∼9에 묘갈명 5편, 묘지명 1편, 행장 5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10에는 연석문대(筵席問對), 권11∼16에 경서변의(經書辨疑) 8편, 권17∼20에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권21·22에 전례문답(典禮問答) 15편, 권23∼30에 가례집람(家禮輯覽), 권31∼34에 상례비요(喪禮備要), 권35∼41에 의례문해(疑禮問解), 권42에 의례문해·습유(拾遺)가 있다.

권43∼45는 부록으로 권43·44에 연보, 권45에 어록 2편이 실려 있다. 권46에 거의록(擧義錄), 권47에 원향록(院享錄)·봉안문·문인록(門人錄), 권48에 가장·행장, 권49에 시장(諡狀)·신도비명·묘지명·묘표음기(墓表陰記)·돈암서원비·돈암서원이건비, 권50에 사제문·교유문·제문·만사·제편서발(諸篇序跋), 권51에 논시호사소(論諡號事疏) 등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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